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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Sep 14, 친구야, 진심으로 축하해. 사람을 만나고, 손을 잡고 거리를 걷다가 좋아하는 까페에서 향 그윽한 커피 한 잔에 미소짓는 일.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잘자요- 그러한 한마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는 것. 나는 왜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란 사람을 지난 몇 년 동안 한결같이 바라보던 사람이 있다, 아니 있었다. 그는 '나 드디어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어-'라는 말을 던지고 내 눈치를 살핀다. 사실 이 남자, 참으로 흠잡을 데 없는 건실한 청년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배려심 가득하고 내 템퍼를 다 이해해줄 수 있는 아량까지 갖추고 있다.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에도, 그는 변함 없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강아지처럼, 충직한 눈동자. 그 맑은 마음.. 더보기
行ってまいります 두시간 뒤면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이겠네요. rain(ritsubee) in Tokyo,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D 실시간 여행 소식은- 트위터/페이스북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모두, 한국을 잘 지켜주세요-!! 더보기
Aug 27, 나는, 덧없이 슬프기 마련이다. 이른바 '문화'가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날이다. 글을 깨우치고, 어설프게 연필을 잡던 아이의 집에는 항상 책이 풍족했다. 제 또래의 큼지막한 글씨의 동화책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늘어나는 책까지, 해가 뜨기 전부터 잠들기 전까지 책장을 넘겨대도 책이 부족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음악. 아이의 어머니는 클래식부터 올드팝까지 아우르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의 딸이 거실에 진열된 LP판을 꺼내어 턴테이블에 얹을 때까지의 시간은 고작 몇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제 컴퓨터를 갖게 되던 9살, 아이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다. 종이에 담겨있던 텍스트는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지게 되고,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생성된 온라인 사회는 미지의 세계, 그 자.. 더보기
Aug 16, 울지 않는 새- 창문을 열어 젖힌다. 채 데워지지 않은 청량한 대기의 내음을 싣고, 한 줄기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창가에 걸터 앉아 토마토를 한 입 베어물던 그는 아차, 돌아서서 부스럭거리며 무엇인가를 한 웅큼 집어 들고 돌아온다. 창문 너머 싸이프러스 나무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은 이름 모를 한 마리 산새였다. '오늘은 어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니?' 그는 나무 밑으로 빵 부스러기를 던져준다. 산새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지에서 내려와 톡톡, 얌전히 모이를 쪼아 먹는다. '아무래도 작은 우산 정도는 챙겨가는 편이 낫겠지.'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모이 먹기를 멈추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 산새. 그 작은 입이 벌어지며 흘러 나오는 것은 낯익은 멜로디다. 지난 몇 달간 청년의 아침은 이 멜로디.. 더보기
Aug 6, 가슴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과 타의로 만나지 못하는 것중에 어느 쪽이 더 슬프고 괴로울까?' 무더운 여름밤, 한 쪽 가슴이 시큰한 사랑을 하는 친구가 이렇게 물어온다. 그리고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 내 인생에, 이 세상에 더이상 그 사람이 없는데도 해는 뜨고 달은 지는거야. 입맛이 없어도 나는 살기 위해 밥을 먹게 되며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거지. 처음에는 말도 못하게 괴롭겠지. 비슷한 뒷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은 결국 혼자인 삶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살아가는거야. 아니 오히려, 나중에 혹 만나게 될 그 사람 앞에서 보다 당당해지기 위해, 더욱 열.. 더보기
Jul 29, 떠나다. 내일 이 시간 즈음에는 낯선 땅에 도착해 호텔로 막 이동중이겠네요. 네, 내일 오후에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애초에 휴가를 계획했을 때와는 몇 가지 변동 사항이 있어서, 예를 들면 회사를 퇴사했다던가 몸무게가 1kg이 늘었다던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다던가- 대강 그러하네요. 돌아오면, 오랫동안 쉬었던 공부를 시작하고 동시에 이력서를 준비해 이곳 저곳의 문을 두드려 보게 될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머리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해요. 나란 녀석은, 틈만 나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감상에 젖으니까요. 특히 요즘 같은 무더운 날엔 그 여름의 기억에 짓눌려 베개 위의 수건이 다 젖어들고 나서야 지쳐 잠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찾게 되는 것은 한.. 더보기
Jul 28,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네 전화는 무척 오랫만이었어. 휴대폰에 뜨는 이름 석자를 보고도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였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오랫만이었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냥, 걷다가 전화 해본거야.'라는 네 첫마디가 들려온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또 있었을까, 괜히 날씨 탓을 하다가 빠진 정적 너머로 구슬프게 우는 매미 울음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니 더 더운 것 같아- '응, 나 들어가 볼게.' 나직한 네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린다. 유난히 '안녕-'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인사에서조차 싫어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네 목소리로 안녕이라 말할까봐, 그렇게 종료 버튼을 재차 눌러댔다고. 끊어져버린 수화기 너머로 답지 않은 변명을 해본다. 너는 아.. 더보기
Jul 27, 편히 잠드소서.. 한없이 따스한 마음에 아름다운 모습, 한 언니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무작정 차를 몰아 도착한 그곳에서, 수척하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는 언니와 마주하게 된다. 장례식장 밥이 참 맛있지- 일행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는다. '저녁 먹고 왔어도, 한 술 맛있게 먹는게 예의-'라는 친구의 말에 수저를 든다. 시뻘건 육개장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아, 정말 맛있네. 우물거리며 밥을 씹어 삼키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저 멀리 문상객 옆에 앉아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언니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죄스럽다. 시선을 피한다. 10여년 전, 나는 내 짝꿍의 장례식장에 서 있었다. 수업시간에 손이 시리다며 캐릭터 담요를 무릎에 나눠 덮고, 나의 오른손, 그녀의 왼손을 꼭 잡은채로 수업을 듣기도 했던, 단짝.. 더보기
Jul 26, 근황. 타들어가는 외줄 위에 서서, 이편인지 저편인지 떨어질 곳만 바라보고 있나니.. 조금만 더 흔들리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결정은, 생각처럼 후련하지도 시원하지도 않네요.. '보여주기 위한 나, 보여주고 싶은 나'라는 필터링을 거친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20대의 꿈과 열정을 담아 시작한 일을, 예상하지 못한 상처들로 인해 비틀어 떼어내며 가장 괴로운 것은 제 자신이니까요. 경건한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한 추모일까요. 더보기
Jul 21, 껍데기- 걷고 있는데, 내가 없다. 웃고 있는데, 내가 없다. 손에 들린 수저로 밥을 떠 넣으려는데, 받아 먹을 입이 없다. 내가 없다. 없다. 없어졌다.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용돌이를 남겨둔 채, 내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껍데기는 그저 주어진 일을 하게 된다. 언젠가 혹 돌아올지 모르는 영혼을 위해, 지치도록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기 위함이다. 이 껍데기라는 놈은 지극히 단순하기 마련이라, 한 번 태엽을 감아주면 제 힘이 다할 때까지 삐걱거리며 괭이질을 한다. 밤이 가시고 아침이 오면, 내리쬐는 태양과 데워지는 대지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글거린다. 흐르는 땀이 눈을 적셔도, 채 따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기계적으로 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