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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Jul 27, 편히 잠드소서..

 

  한없이 따스한 마음에 아름다운 모습, 한 언니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무작정 차를 몰아 도착한 그곳에서, 수척하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는 언니와 마주하게 된다. 장례식장 밥이 참 맛있지- 일행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는다. '저녁 먹고 왔어도, 한 술 맛있게 먹는게 예의-'라는 친구의 말에 수저를 든다. 시뻘건 육개장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아, 정말 맛있네. 우물거리며 밥을 씹어 삼키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저 멀리 문상객 옆에 앉아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언니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죄스럽다. 시선을 피한다.

  10여년 전, 나는 내 짝꿍의 장례식장에 서 있었다. 수업시간에 손이 시리다며 캐릭터 담요를 무릎에 나눠 덮고, 나의 오른손, 그녀의 왼손을 꼭 잡은채로 수업을 듣기도 했던, 단짝 친구의 장례식장은 너무나 낯설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손을 흔들던 친구가, 바로 지척의 관에 잠들어 있는데 나는 그녀를 안아 보지도 못하고 그저 흑백의 영정 사진을 하염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짝꿍의 죽음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소녀를 둘러싸고 시끌벅적하게 음식을 먹으며 고스톱을 치는 어른들을, 그녀는 경멸했다. 꾸역거리며 입안으로 음식들을 밀어 넣기에 바쁜 손놀림들은 그녀로 하여금 장례식장 밖으로 뛰쳐나와 헛구역질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길로 친구의 마지막 숨결이 배인 어느 아파트의 잔디밭을 찾아 새벽의 도심을 헤매게 된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소녀의 경멸에 찬 눈길을 받던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차갑게 굳어있는 언니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고 오지 못한 후회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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