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물아홉 여자사람

Jul 28,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네 전화는 무척 오랫만이었어. 휴대폰에 뜨는 이름 석자를 보고도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였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오랫만이었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냥, 걷다가 전화 해본거야.'라는 네 첫마디가 들려온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또 있었을까, 괜히 날씨 탓을 하다가 빠진 정적 너머로 구슬프게 우는 매미 울음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니 더 더운 것 같아- '응, 나 들어가 볼게.' 나직한 네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린다. 유난히 '안녕-'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인사에서조차 싫어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네 목소리로 안녕이라 말할까봐, 그렇게 종료 버튼을 재차 눌러댔다고. 끊어져버린 수화기 너머로 답지 않은 변명을 해본다. 너는 아마도 씁쓸하게 웃으며 답할 것이다. '알고 있었어, 잊을 리가 없잖아.'

  소소한 대화가 그립다. 플랫 슈즈를 사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았는데, 앞에 달린 토끼 얼굴이 무척 귀여웠지만 흰 가죽이어서 금방 헤질 것 같아 사지 못하고 돌아섰다던가 저녁에 먹은 해물 스튜가 너무 매워서 네가 먹었으면 분명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게 분명하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너여서 들려 주고 싶은 그런 이야기는 어디로 흘려 보내야 할까.

  그러고보니
  좋아해, 사랑해. 마음을 표현하는 이 아름다운 말들을
  입 밖으로 말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구나.

  사라지지도 못하는, 이 몹쓸 감정들.





'스물아홉 여자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Aug 6, 가슴 속에-  (6) 2010.08.06
Jul 29, 떠나다.  (2) 2010.07.30
Jul 27, 편히 잠드소서..  (1) 2010.07.27
Jul 26, 근황.  (2) 2010.07.26
Jul 21, 껍데기-  (2) 2010.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