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물아홉 여자사람

May 20,


  굳이 따지자면, 나는 '들어주는 사람'쪽에 가깝다. 교과서 암기는 참 죽어라고 못했는데 사람들 이야기는 귀에 쏙쏙 잘만 들어와서 본인도 잊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게 다반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말하자면)그저 흘려 들은 일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탓에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귀 기울여 잘 들어 주는구나.'라고 판단하게 된다. 게다가 자상한 엄마 밑에서 보고 자란게 사람 care하는 것이라 나는 또 가볍든 무겁든 내게 썰을 풀어놓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응대해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러다 보니 할 말 다하고 받고 싶은 위로 다 받은 사람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화를 마치고, 나는 내 자신의 이야기는 영 풀어내지 못한채 뒤돌아서는 것이다. 음식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존재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취약하다. 글을 쓰고, 사진에 감정을 담아내는 것은 이미 자아라는 필터링을 거친 허구의 산물이다. 이런 내가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은 손가락 다섯도 채 못되는데, 참고 참다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고민, 문제들을 이야기 하는 순간은 매번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내 기대치가 무너지는 계기가 된다. 내 자신이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취하지 않았을 무신경한, 이기적인, 혹은 너무나 속내가 드러나는 각각의 반응들을 지켜 보고 있으면 평소 그들을 포함, 대화창에 내 이름만 뜨면 미친듯이 달려들어 주저리주저리 속내 꺼내기에 바쁜 기타 지인들에게 정도는 달라도 진심으로 응대하는 내가 참 맑은 병신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나는 만족하지도 못하고 되려 기분이 나빠진 채로 대화를 끝내고야 만다.
  심리학과를 나와 어딘가의 기관에 들어가 상담일을 업으로 삼았어야 했을까.

  나를 받아줄,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지구 반대편 그 어딘가에서 일찌감치 죽어버린 모양이다, 쩝.


'스물아홉 여자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y 23,  (1) 2010.05.23
May 21,  (4) 2010.05.21
May 19,  (15) 2010.05.19
AR(augmented reality)의 좋은 예,  (8) 2010.05.17
May 16, 그래도 아직은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6) 2010.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