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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May 31, 화장 못하는 여자.

 


  어린 날에는 이런 셀프도 찍었었구나-

  밤새 춥다 추워, 연신 몸을 웅크리며 자다 일어난 계기는, 불똥이 무릎에 떨어져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화상을 입은 꿈이었다. 어쿠쿠, 벌떡 일어난 나는 오른손으로 연신 무릎을 쓸어내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부슬거리는 아침비가 내리고 있었고 옷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서니 초췌한 직장인이 서 있더라. 며칠 전, M PD와 이야기했던 탓도 있고 뭔가 썬블락과 비비크림만으로는 매너가 아니다 싶은 나이가 되었다고 (이제라도)판단, 얼굴에 색을 넣을 색조 화장품을 찾아 화장대를 뒤적거렸다. 화장대 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수분 크림, 두가지 종류의 썬블락, 비비크림, 엄마의 손등로션으로 전락하기만을 기다리는 새것이나 다름 없는 아이크림이 전부였다. 서랍을 연다. 데구르르, 니베아 립글로즈가 두개 굴러 나온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 건넌방으로 달려간다. 역시나, 책상 위에 똑같은 녀석들이 두개 더 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피부과 의사를 만나던 시절에 그가 즐겨 쓰던 제품이라 따라 샀던 것 같다. 왠지 모를 신뢰감이랄까. 그러나 필경 겨울이 지나고 추위가 한결 가시자 방안에 던져둔 채로 잊혀진 것이겠지. 여하튼 낼모레 서른이 되는 여자사람의 화장대 치고는 너무나 간결하고 소박하여 슬픔에 젖은 월요일 아침이 되고야 만 것이다.

  이렇게 재 묻은 오덕처럼 살다가 어느 날 짠, 화장을 하게 되면 여자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하는,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나랑 사귀어줘.'와 비슷한 맥락으로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조금쯤 더 꿈꾸며 살고 싶은 것 뿐이라고, 나의 이 美에 대한 무지함을 포장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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