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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Apr 29,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니까 사람이다. 사람은 외롭다. Never Ever'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여전히, 지금의 나는 혼자 살아가는데 최적화된 인간일 뿐. 행복이야 그 순간이 지나서 알게 되는 놈이고, 결국 반추 or 후회 둘중에 하나로 구현되기 마련이니 감정의 굴곡선을 인위적으로 잡아당겨 일자로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tip.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세트처럼 엉켜다니는 놈들이라 어느쪽 하나만을 취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모두 버리자. 나는 너무나 지쳐있다. 더보기
Apr 28, 고프다. 배가 고픈가? 밥을 차린다. 수저를 든다. 식욕이 없다. 잠이 고픈가? 침대에 몸을 뉘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일어난다. 고프다. 무엇이 고픈가. 이유 없는 목마름. 결여되어 있다. 알고 있다. 사실,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다, 이런 것에는. 외로운 날에는 외롭게, 고독한 날에는 고독하게. 슬프면 슬픈대로 눈물 나면 눈물 나는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감정이란 놈은 올가미와도 같아서 몸부림칠수록 옭아매기 때문이겠지. 더보기
Apr 23,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영면으로 접어드는 것에 대한 아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여섯살 꼬마 시절부터 한국에서는 사촌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말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예를 들며 코가 새빨개지도록 울어댔던 국민학교 3학년을 지나 20대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책을 읽는 것 다음으로 즐거웠던 것은 바로 사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렇게 원하던 '머릿속에서 뽑아내어 현실로 구현하는'科의 일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 기획, 마케팅, 광고, 이 모든 범위를 넘나드는 일은 마치 놀이동산과도 같아서 이 내 한몸을 들었다 놨다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이다. 폐장 시간이 가까워지고 심신이 지쳤어도 땀에 절은 머리를 하고 한번만 더, 이것까지만'을 외치며 엄마의 손을 잡아 이끄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다면.. 더보기
Apr 19, 괜찮아, 니편이잖니. 딱히 내가 니편이 아니라면 2009년의 나는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2009년은 김단비님과 꽤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지. 2009년의 너는 알아. 2010년의 나는 나도 몰라. 2009년의 나는 알 것 같아. 그립다. 정말 하나 하나 이루어가는데 지독하게도 혼자다. 걱정마 여기 있으니까. 약속이나 튕기지마, 흥. 너도 갈꺼면 그냥 빨리 가. 딱히 갈 생각도 없고 한 번 만나고 싶긴 하다. 김단비씨, 이건 뭐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어. 보드카토닉 말아줄끈? 샹그리아 담가줄끈?? 만나면 무너질 것 같기도 하고 만나면 더 상처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어. 그런가.. 그건 만나서 생각합시다. 살다보니 나를 잊을때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만나서 손해보는 사람은 아니.. 더보기
Apr 18, 남부순환로를 빠져나와 테헤란로로 마악 들어서던 때였다, 메뚜기 같은 지선버스가 내 앞에서 급정거를 하던 순간은. 빠-앙, 미국에 다녀온 후에 생긴 습관 중에 하나가 '되도록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였는데 누적된 피로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듯 어느새 내 손은 클랙슨을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버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우회전 전용으로 한차선인 까닭에 여지 없이 버스 뒤에 멍하니 서서 수분을 기다렸다.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눕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찰나, 난데 없이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 깜-빡, 눈이 무겁다. 오른쪽 눈을 가려본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종일 렌즈를 끼고 있던 탓에, 만성 안구 건조증인 내 눈이 말 그대로 렌즈를 튕겨내버린 것이다. 주책맞게 힘이 좋은 각막 .. 더보기
Feb 16, 2009 벽에 붙은 일정표를 부욱, 뜯어내었다. 미세하게 남아있는 테이프의 흔적들. 아무리 떼어내도 영, 깔끔스럽지 못하다. 사랑도 이별도 그러했다.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을 거에요. 마음 놓고 해봐요.'라는 그의 말. 아마도 그 때 그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흔적 없이 깨끗하게'라는 테이프의 광고문구를 몇달이 흐른 지금에 와서 탓해봐야 소용 없듯이 너덜거리는 마음을 그 사람의 눈앞에 들이대며 지난 추억마저 퇴색시킬 용기는, 내지 않아도 괜찮다. - 내나이 스물일곱적에, 더보기
Apr 6 운동을 하는 내내 퍼렇게 질려 있었던 것은 분명, 장꼬임의 복선이었을 것이다. 힘찬 트레이너와 나는 마치 스머프 같다며 웃어 넘겼지만 장의 연동 작용은 그때부터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나보다. 절정은,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앉아 엄마와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였다. 제 3자처럼 담담하게,(내 감정을 실을수록 엄마의 걱정 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깔끔한 결말을 위한 화려한 레시피를 읊어가듯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며 브리핑을 마쳤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직할 수 없는 내 장은 시위라도 하듯 파업을 선언한다. 눌러서 딱딱한 이 복부가 근육으로 인한 그것이면 참 반가우련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힘찬이도 안다. 이리 저리 눌러대며 외부의 힘을 빌어 연동 운동에 시동을 걸어보려.. 더보기
Apr 5 화장품이 똑- 떨어졌다. 스무살때부터 아이크림을 바른 엄마는 당신의 팽팽한 피부가 절대 선천적이 아니라며 종종 아이크림을 사다 쥐어주신다. 하지만 매번 무색할 정도로 지문자국 하나 없는, 오래되고도 새것인 아이크림들은 결국 엄마의 손등 위에 곱게 발리고 있다. 스킨, 로션, 에센스 모두 무시하고 살아온 지 25년이 되던 어느 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화장품을 사달라고 말하게 된다. 발단은 친한 언니의 결혼식 준비 과정에 있었다. 서른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이셨던 언니는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기쁜 소식을 듣게 되고, 사진을 좋아하는 언니와 형부는 웨딩 촬영에 나를 불러내어 스냅 촬영을 부탁하셨다. 촬영 당일, 새벽부터 청담동 모 미용실로 향했다. 동안의 최강자인 S언니.. 더보기
Apr 3, 환불 절차를 밟기 위해 영수증을 챙기는 김모씨. 주섬주섬 옷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준비 끝, 이제 환불하러- 시험 보러 가는 길에 눈에 띄는 것들은 모두 다 챙겨 넣는 여학생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 필통을 열면 반쯤 찢어진 단풍잎, 셔틀콕에서 빠져나온 작은 깃털 혹은 닭둘기의 잔해, 텅 비어있는 샤프심통 등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소풍 때마다 지겹사리 가게 되는 L모 놀이공원에서도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뒤 타겠다며 매번 친구들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올때까지 밑에서 짐을 지키고 있었다. 시험날 아침 등교길에 주운 물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 놀이기구를 가려 탄다면, 실력 이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스스로의 징크스를 만들어내며 고등학교 2년 반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