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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Jul 19, 동반.

 



  달빛이 일렁이는 물결 속으로 발을 집어 넣는다. 새하얀 살결을 부드럽게 밀어내는 그네들의 저항.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잡아 올린 치마 끝이 처덕거리며 물결에 닿는 순간, 손을 놓아버린다. 허벅지에 감겨 오는 치마가, 누군가의 미련처럼 그렇게 버겁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납작한 곡선을 그리는 배를 간지럽히는 파도. 휘저으며 앞으로 나가는 양 손에는 어느새 푸른 해초가 걸려온다. 나아간다. 거친 바다는 봉긋한 가슴마저 삼켜 버린다. 걷는다. 턱을 간지럽히는 물결. 헐떡거리며 삼키는 숨 사이로 짠맛이 느껴진다. 이윽고, 더이상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밤이구나.

  나는 느낀다. 사라져가는 나를, 그가 지켜 보고 있다.
  그의 두 눈은 밤바다를 향한 채, 고정되어 있다.
  거친 바람에 몰린 그의 몸이 천천히 쓰러진다.
  조금쯤 벌어진 붉은 입술에 모래가 묻는다.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나를 지켜보는 그의 가슴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다.
  나는, 그에게로 간다.
  사랑하는 이여,
  다시 만나요.
  어딘가에서.
  기다려줘.
  이 나를,
  우리를.
  부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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