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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Jun 2, 아침이 두려운 이유,



  아픈 날은 유난히 팔이 저리다.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 행동이 단순한 부주의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헛되이 자신을 탓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며 고른 호흡에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쥐어짜듯 저려오는 익숙한 통증에 몸을 둥글게 말고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기도 한다. 이불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는 아침을 보내고 나면 그 날 하루는 왜 그리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지하철 계단 하나 올라가는 것이 못내 힘겨워 커다란 가방을 메고 망연자실, 올려다 본 적도 있었다. 마침 출근 중이던 그가 허옇게 질린 나에게서 가방을 빼앗아 들다시피 하고 성큼 성큼 계단을 올라가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먼저 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여름 방학 내내, 그는 어김 없이 그 자리에 나타났고 그 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내 가방을 들어주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떠한 의식처럼 생각되었고 고등학생 소녀의 가방을 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보여주며 묵묵히 앞서 걷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가방을 돌려주면 소녀는 그제서야 망설이던 입을 뗀다. '고맙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 그의 나이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여자는 여전히 그때처럼 어딘가의 계단 밑에서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얕은 한숨을 쉬는 것이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일어나는 순간은, 고통스럽기 그지 없다. 종교가 없는 나는 간사하게도, 잠들기 전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작게 중얼거리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건강한 하루를 주세요- 오늘과 같이 마음먹은 제 할일을 다 하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하는 밤은 여지 없이 원망스러운 눈물이 흐르곤 하나니. 살아 있음에 한없이 감사함에도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내 탓이로소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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