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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겁쟁이 언제나 그 마지막은 아픔으로 얼룩진 결말이라며 상처를 두려워하는 여자는, 그저 되뇌일 뿐.. 더보기
Feb 19, 바람이 분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온 몸으로 바람을 마주하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가락에 온기가 묻어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떨어진다. '덮은 책장을 다시 열어 처음부터 읽고, 또 읽고, 이 모든 것을 외워버릴 만큼 되풀이되는 세월을 보냈네요.' 익숙하게 훔쳐내는 그녀의 슬픔 사이로 얼핏 보인 것은 희망이었다. '사실은 두려워요. 어쩌면 저는 결말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오랫만에 미소를 짓는 그녀, 떨리는 어깨를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 아시나요?' 성.. 더보기
Jul 28,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네 전화는 무척 오랫만이었어. 휴대폰에 뜨는 이름 석자를 보고도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였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오랫만이었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냥, 걷다가 전화 해본거야.'라는 네 첫마디가 들려온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또 있었을까, 괜히 날씨 탓을 하다가 빠진 정적 너머로 구슬프게 우는 매미 울음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니 더 더운 것 같아- '응, 나 들어가 볼게.' 나직한 네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린다. 유난히 '안녕-'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인사에서조차 싫어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네 목소리로 안녕이라 말할까봐, 그렇게 종료 버튼을 재차 눌러댔다고. 끊어져버린 수화기 너머로 답지 않은 변명을 해본다. 너는 아.. 더보기
Apr 29, 오랫만에 푸른 하늘이었다. 서늘한 바람만 빼면, 가히 봄이구나 믿을 정도로 쾌청한 날씨. 그런 좋은 날에 말단 신입은 감히 반차를 쓰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득,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휴대폰을 꺼낸다. 두세개의 신호등을 지날 때까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병원에 들어 섰는지, 무슨 검사를 했으며 약은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안방 침대에서 깨어났으며 일어나자마자 접속한 회사 메일함에는 대여섯개의 메일이 쌓여 있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엇을 기억해내려 하는지조차 자꾸만 잊는 바람에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웠으며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고 연락처를 뒤적거리다 기억이 끊긴 것 같다. 회사에서 진통제 네알을 먹었으니, '정말 아플때만 먹어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