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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Jul 29, 떠나다. 내일 이 시간 즈음에는 낯선 땅에 도착해 호텔로 막 이동중이겠네요. 네, 내일 오후에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애초에 휴가를 계획했을 때와는 몇 가지 변동 사항이 있어서, 예를 들면 회사를 퇴사했다던가 몸무게가 1kg이 늘었다던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다던가- 대강 그러하네요. 돌아오면, 오랫동안 쉬었던 공부를 시작하고 동시에 이력서를 준비해 이곳 저곳의 문을 두드려 보게 될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머리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해요. 나란 녀석은, 틈만 나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감상에 젖으니까요. 특히 요즘 같은 무더운 날엔 그 여름의 기억에 짓눌려 베개 위의 수건이 다 젖어들고 나서야 지쳐 잠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찾게 되는 것은 한.. 더보기
그 고요함이란- photo by 사진찍는글쟁이 그때 그 감정을 추스려보려 해도 흘려보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 눈이 마주칠 때의 그 고요함이란- ⓒ 사진찍는 글쟁이 All Rights Reserved 더보기
Jul 28,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네 전화는 무척 오랫만이었어. 휴대폰에 뜨는 이름 석자를 보고도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였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오랫만이었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그냥, 걷다가 전화 해본거야.'라는 네 첫마디가 들려온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또 있었을까, 괜히 날씨 탓을 하다가 빠진 정적 너머로 구슬프게 우는 매미 울음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니 더 더운 것 같아- '응, 나 들어가 볼게.' 나직한 네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린다. 유난히 '안녕-'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인사에서조차 싫어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네 목소리로 안녕이라 말할까봐, 그렇게 종료 버튼을 재차 눌러댔다고. 끊어져버린 수화기 너머로 답지 않은 변명을 해본다. 너는 아.. 더보기
Jul 27, 편히 잠드소서.. 한없이 따스한 마음에 아름다운 모습, 한 언니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무작정 차를 몰아 도착한 그곳에서, 수척하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는 언니와 마주하게 된다. 장례식장 밥이 참 맛있지- 일행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는다. '저녁 먹고 왔어도, 한 술 맛있게 먹는게 예의-'라는 친구의 말에 수저를 든다. 시뻘건 육개장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아, 정말 맛있네. 우물거리며 밥을 씹어 삼키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저 멀리 문상객 옆에 앉아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언니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죄스럽다. 시선을 피한다. 10여년 전, 나는 내 짝꿍의 장례식장에 서 있었다. 수업시간에 손이 시리다며 캐릭터 담요를 무릎에 나눠 덮고, 나의 오른손, 그녀의 왼손을 꼭 잡은채로 수업을 듣기도 했던, 단짝.. 더보기
Jul 21, 껍데기- 걷고 있는데, 내가 없다. 웃고 있는데, 내가 없다. 손에 들린 수저로 밥을 떠 넣으려는데, 받아 먹을 입이 없다. 내가 없다. 없다. 없어졌다.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용돌이를 남겨둔 채, 내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껍데기는 그저 주어진 일을 하게 된다. 언젠가 혹 돌아올지 모르는 영혼을 위해, 지치도록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기 위함이다. 이 껍데기라는 놈은 지극히 단순하기 마련이라, 한 번 태엽을 감아주면 제 힘이 다할 때까지 삐걱거리며 괭이질을 한다. 밤이 가시고 아침이 오면, 내리쬐는 태양과 데워지는 대지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글거린다. 흐르는 땀이 눈을 적셔도, 채 따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기계적으로 내.. 더보기
Jul 19, 동반. 달빛이 일렁이는 물결 속으로 발을 집어 넣는다. 새하얀 살결을 부드럽게 밀어내는 그네들의 저항.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잡아 올린 치마 끝이 처덕거리며 물결에 닿는 순간, 손을 놓아버린다. 허벅지에 감겨 오는 치마가, 누군가의 미련처럼 그렇게 버겁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납작한 곡선을 그리는 배를 간지럽히는 파도. 휘저으며 앞으로 나가는 양 손에는 어느새 푸른 해초가 걸려온다. 나아간다. 거친 바다는 봉긋한 가슴마저 삼켜 버린다. 걷는다. 턱을 간지럽히는 물결. 헐떡거리며 삼키는 숨 사이로 짠맛이 느껴진다. 이윽고, 더이상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밤이구나. 나는 느낀다. 사라져가는 나를, 그가 지켜 보고 있다. 그의.. 더보기
Jul 18, 한 여름밤의 꿈-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의 공원, 작은 여자아이가 살금 살금 비둘기를 향해 걷고 있다. 자박거리는 서툰 발걸음 덕에, 비둘기들이 아이의 머리를 스치듯 날아 오른다. 놀란 아이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선다. 아이가 울면서 나를 향해, 그 작은 손을 뻗는다. 달려간다. 눈물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여자 아이는 내게 매달리듯 안긴다. 익숙한 무게, 아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이. 남편은, 꼬물거리는 아이의 손이 그렇게 귀엽다며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더럽다며 눈을 흘기는 내게, 당신이 해주는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걸-이라고 미운 소리를 한다. 연애 시절에 그렇게 좋아하던 당신 향수보다, 나도 내 딸 살내음이 훨씬 좋거든?' 입을 삐죽이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더보기
Jul 13, 매력적인 dead end- 기억해줘-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 것을 보니 나란 사람, 참 이리도 유약하기 그지 없다. 내게 있어 미련이라 함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잊게 되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러하다. 미약한 인간에 불과한 오만한 사람인 것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미미하게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는 것. 천천히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것 만큼- 이 얼마나 매력적인 dead end란 말이던가. 한숨이 잦아진다. 더보기
Jul 10, 연애를 못하는 이유- '잊지 못하는 거네요?' 잊어야 하는건가요, 잊지 않으면 안되는건가요,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나요- '그것이, 다음 사람에 대한 일종의 예의 아닐까요.' 저는 만났던 사람-들을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소중한 존재였던 상대방과 교감했던 그 시간은 분명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의 깊이 만큼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니까요. 그래서 절연하듯, 지우는 일은 불가능한 일임과 동시에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겠구요. 또한 내가 그렇듯, 상대방의 과거도 존중합니다. 아아, 이 부분이랑 잊고, 잊지 않고는 다르다는것 물론 알아요. 솔직히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 진심에 의한 자의든 배려 차원의 타의든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바에요. 하지만 저는 그래요. 마음에 너무나 깊히 .. 더보기
Jun 8, 오래 살아. 빠르게 흘러간다. 이리저리 세상을 둘러보며 느리게 걷고 싶어도, 이를 내버려두지 않는 인생을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집어지는 감정이란 놈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떨쳐낼 수 없는 과거, 품고 가야 할 기억. 헐떡거리는 것은 몹쓸 심장 때문만은 아니겠다. 하루를 보내도 이틀처럼 살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나란 사람의 일상에 네가 다시금 뛰어 들어오다. 훌쩍 떠나가던 그 순간처럼 불쑥 찾아온 너는 비틀거리는 내 앞에 한 웅큼의 피를 토해놓고 뒤돌아 걸어간다. 나는 너를 잡을 수 없다. 너도 알고 있으리라. 나는 가장 오래된 친구인 너를 잃었지만 너는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에서 떠나가는 너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우정이란 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