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껍데기-
걷고 있는데, 내가 없다. 웃고 있는데, 내가 없다. 손에 들린 수저로 밥을 떠 넣으려는데, 받아 먹을 입이 없다. 내가 없다. 없다. 없어졌다.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용돌이를 남겨둔 채, 내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껍데기는 그저 주어진 일을 하게 된다. 언젠가 혹 돌아올지 모르는 영혼을 위해, 지치도록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기 위함이다. 이 껍데기라는 놈은 지극히 단순하기 마련이라, 한 번 태엽을 감아주면 제 힘이 다할 때까지 삐걱거리며 괭이질을 한다. 밤이 가시고 아침이 오면, 내리쬐는 태양과 데워지는 대지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글거린다. 흐르는 땀이 눈을 적셔도, 채 따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기계적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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