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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는글쟁이

Jun 2, 아침이 두려운 이유, 아픈 날은 유난히 팔이 저리다.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 행동이 단순한 부주의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헛되이 자신을 탓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며 고른 호흡에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쥐어짜듯 저려오는 익숙한 통증에 몸을 둥글게 말고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기도 한다. 이불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는 아침을 보내고 나면 그 날 하루는 왜 그리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지하철 계단 하나 올라가는 것이 못내 힘겨워 커다란 가방을 메고 망연자실, 올려다 본 적도 있었다. 마침 출근 중이던 그가 허옇게 질린 나에게서 가방을 빼앗아 들다시피 하고 성큼 성큼 계단을 올라가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먼저 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보기
Jul 1, 피폐함 혹은 그 무엇- photo by hs, NYC에서 사진 학교에 다니며. 주말이면 met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flea market에서 오래된 카메라들과 인사하며. habana에서 콘을 뜯으며 마일드한 커피를 마시고. 센트럴 파크 건너편 작은 까페의 게이 서빙맨에도 익숙해지고 싶었는데. 그런 나날을 꿈꾸던 내가 있었는데. 요리를 배우고 싶고, 소소한 인테리어에 관심이 가고. 작은 소품들이 눈에 들어오며 클래식 비틀에 마음이 가는 날 보니. 3년 정도 후에는 그대 손을 잡고 런던에서 가장 큰 장난감 가게 앞에 서서. 이곳이 바로 내가 10차선 무단횡단을 했던 곳이야(웃음)'라는 대사를 하는 내가 있을 것도 같다. - Jul 2007 잘 짜여진 루틴에 길들여져 칼퇴근에 꼬리 흔들고 주말에는 실내복을 벗기 싫어하는 3년 후의 내.. 더보기
Jun 25, 마음은 이미- 톡-톡, 손톱이 튄다. 쥐가 주워먹으면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옛말이 뇌리를 스치기도 하지만, 어느새 밤이 아니면 손톱 하나 깎을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자다. 불과 며칠 전이다, 손이 참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그 때 여자는 결심했다, 손끝이 뭉툭한 초등학생 손으로 돌아가야지. 분홍색 살이 부어 오를 정도로 손톱을 짧게 깎아놓는다. 여간 아프지 않다, 아린 손가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그러면서도 하나, 또 하나. 이윽고 성인 여자의 손은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돌아간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 힐보다 플랫을 선호한다. 네일 아트보다 손톱깍기를 더 신뢰한다. 옷장에 있는 옷을 순서대로 걸칠 뿐이다. 때로 사람들은 묻는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꾸미는 즐거움'을 왜 누리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답.. 더보기
Jun 20, the ring- 그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테이블 위에 가만히 내려놓더니, 내 앞으로 살짝 밀어주는 그 손길이 마냥 수줍다. 우리, 오늘 처음 만났는데요? 그가 웃는다. 열어봐요- 목소리조차 낯설다. 반지가 두개, 고개를 내민다. 그를 바라본다. 그가 입을 연다. '나는요, 단비씨를 알아가고 싶고, 차츰 알아가게 될 거에요. 그런데 이게 왠지 맞는 수순 같아서.' 애꿎은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던 그. 다시금 입을 연다. '모두 단비씨한테 맡길게요. 누구에게, 언제, 왜, 묻지 않을게요.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답을 알고 있으니까요.' 눈이 마주친다. 진심이 담긴 눈. 나는 반지를 꺼내든다. 마치 거짓말처럼, 손가락에 잘 맞는다. 그리고 남은 하나를 들어- 새벽녘, 꿈을 꾸었다.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더보기
Jun 18, 넣어둬- 넣어둬. photo by hs, 살면서 더러운 일은 참 많다. (평소 입은 걸걸한 편이지만 의외로 하드한 단어들은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단어를 쓰는 내 자신조차 오염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은 예외로 하자.) 하지만 가장 더러운 것은, 무시하기 힘든 정도의 부당함이 따지고 보면 나라는 사람의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는 경우이다. 싸이코같은 군대 고참이든, 젠틀한 직장 상사든, 평소에는 한없이 상냥하고 예쁜 여자 친구든, 나와 연계되어 있는 그 깊이 만큼 그들의 행동은 내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굳이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라는 의문은 닥치고 넣어둬야 서로에게 좋다. 어찌 되었든, 더럽고 치사한 이 어떤 순간은 곧 지나가는 정점이기 마련이고, 점들이 이어져 선으로 구현되는 현실에서의.. 더보기
Jun 17, 대한민국 화이팅 :D 찍-찍찍찍! 그리스전 당시 잘 놀고 나서 한 장 찍혀있는 사진을 보니 왠지 누구씨가 생각나여 오늘은 냥이 머리띠를 들고 나왔다는. (어떤 팔로워분의 요청이 있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겸사겸사, 지금 가방 안에는 붉은 티 하나와 냥이 머리띠가 들어 있는 것이고, 퇴근 시간은 30여분이 남았으며 타 부서의 워크샵으로 인해 회사는 전체적으로 한산한 편. 이거 잘하면 정시 퇴근도 가능하겠다 싶은데 아뿔싸, 오늘 목적지는 강남에서 멀리 떨어진 홍대가 아니었던가. 친구 녀석들은 왜 이리도 홍대를 좋아하는지. 그래도 몇 년 만에 뭉치는 친구들을 생각하니 피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거니와 4년 후에는 어떠한 사정으로 월드컵을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하에 지친 발걸음을 홍대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 녀석들, 기분파.. 더보기
Jun 16, 외로움의 이유- 마음이 맞는, 이해할 수 있는, 이해하고 싶은, 이야기가 즐거운, 그런 존재가 절실했다. 발전할 수 있는, 성장 가능한, 도움이 되는, 둘이 모여 이백이 되는, 그런 관계가 필요했다. 이러한 상대가 사랑하는 연인이다? 그야말로 베스트. 나를 이끌어주는 멘토? 적절하다. 80대 노파든 10살 먹은 어린아이든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현상학적인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 나름의 매력이 있으므로 끌리게 된다면, 본질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에 있으리오. 가슴 속 불이 뜨겁다. 이를 타오르게 할 한웅큼의 산소를 그저 기다리며, 그 기다림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나아가고 싶다. 나아가, 만나고 싶다. 70억명이 살아가는 이 한 세상,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외로운걸까. 그것은 바로 70억개의 .. 더보기
아직도 나는, photo by 사진찍는글쟁이 죽음에 대한 슬픔은 어떻게 위로 받아야 할까요?' 나는 소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있기에. 아직도 그의 뒷모습을 닮은 사람을 보게되면 나는. ⓒ 사진찍는 글쟁이 All Rights Reserved 더보기
Jun 15, 살자꾸나, 오래도록.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고조된다. 볼은 홍조를 띄고, 고무된 판단력은 하늘 끝까지 날아 올라,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벅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내 삶이, 잠이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 투덜거리기 마련이어도 결국에는, 내가 좋으니 영위하는 것 아니던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응당 주어진 일이므로, 거절하기 미안해서, 왠지 정답인 것 같으니까- 위와 같은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을 진행할 만큼 호인은 아닌 것이다 나란 사람. 유난한 기분파에, 단순무식한 성향을 지닌 여자 사람은 달아오른 술기운에 쌩긋, 웃어본다. 작년 겨울,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며 '다시는 연애따위, 하지 못할꺼야.'를 되새김질하던 기억에, 이제 그러한 감성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자신에게 .. 더보기
꽂혔다, 신조어, 비속어를 지양하는 나지만, 이 노래에 대해서 만큼은 '꽂혔다-'라는 동사를 써야 하겠다. Ra.D의 I'm in love(piano RMX). 머리가 단순한 탓에, 처음 어떠한 노래를 접할 때에는 반주에 대한 하나하나의 악기를 듣고, 마지막에 들리는 것이 가사가 되는 것이다. 이 곡의 경우에는, 가사가 들어오기 전에 리듬과, 분위기와, 음색에 빠져버려서 딱히 마음에 드는 가사는 아니어도 이미 자꾸 귓가를 맴돈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대뜸 연락할 오빠가 없는 관계로 스스로 익혀 '실행'을 즐겨 쓰는 여자사람이 되었다던가, 전완근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서 365일 볼 요량으로 검도를 시작했다던가, Jason Mraz의 음악이 좋아서 기타 독학을 했다던가, 흔히들 이성에게서 느끼는 매력을 스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