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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자사람

Nov 18, 추억은 어디에-

 


  오랫만에 취재차 인사동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아기자기한 까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지금은 없어진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내가 꽤 좋아하던 '귀천'이라는 전통찻집이 떠올랐다. (이 시점을 기해, 존경하는 고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여사님께 애도를 고한다. 하지만 허허,웃으며 소풍 끝내고 돌아가신 그분의 곁에서 도리어 행복하시지 않을까,라는 이상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인터뷰를 하며 가게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권도 버리지 않고 소장중이라는 두꺼운 방명록 노트들. 처음에는 그저- 사진작가님이 공방 촬영을 가신 틈을 타서 몇 장 넘겨볼 심산이었다. 한 장, 두 장, 함께 이곳을 찾은 연인들의 소중한 추억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눈물 자국을 남긴 이름모를 여자분, 다음달에 결혼한다, 기념일이다, 취업에 성공했다, 정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이 이곳에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촬영 시작하죠-'라며 어깨를 툭툭 치는 익숙한 목소리에 아쉬워할만큼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시간여의 취재가 끝난 후,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방명록을 넘기다 빈 종이를 발견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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